[라디오] 노동안전 종합대책, '산재와의 전쟁' 해법 될까(2025.09.16)
2025년 9월 16일 화요일 ~08:56:00
노동안전 종합대책, '산재와의 전쟁' 해법 될까
오늘은 최근 정부가 발표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에 대해 짚어보겠습니다. 새 정부가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처음 내놓은 범부처 대책인데요. 노동자의 권리 보장과 기업 제재 강화가 핵심입니다. 음성노동인권센터 박성우 상임활동가와 함께합니다.
1. 먼저, 이번에 발표된 ‘노동안전 종합대책’, 어떤 내용이 담겼나요?
이번 대책은 크게 세 가지 축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하는 겁니다. 정부는 노동자를 단순히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예방의 ‘주체’로 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유명무실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작업중지권의 행사 요건을 완화했습니다. 현행법은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만 대피할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급박한 위험의 우려”만 있어도 작업을 멈출 수 있습니다.
또 정당하게 작업을 중지했는데도 해고나 징계를 당하면 사용자에게 형사처벌을 물릴 수 있는 규정도 신설됩니다. 여기에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제도를 의무화하고, 단순한 위촉에 그치지 않고 작업중지와 시정조치 요구권까지 부여했습니다.
둘째, 경제적 제재 강화입니다. 중대재해가 반복되는 기업에는 매출이 아닌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과징금을 부과합니다. 연간 3명 이상 사망자가 발생하면 영업이익의 5% 이내, 최소 30억 원부터 과징금을 물게 됩니다. 또 건설사 같은 경우, 지금은 ‘동시에 2명 이상 사망’해야 영업정지가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연간 다수 사망’으로도 제재가 가능합니다. 영업정지 이후에도 사고가 반복되면 아예 등록 말소까지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셋째, 노사정 협의 구조 강화입니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이번 대책 발표 자리에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를 제안했습니다. 이후 구체적인 제재 방안이나 예방 조치를 노사정 대표자 회의에서 논의해 나가겠다는 겁니다. 또 별도의 안전한 일터 특별위원회를 신설해, 산재예방 5개년 계획을 세우겠다고 밝혔습니다.
2. 노동계에서는 이런 대책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노동계는 방향 자체는 환영하지만, 실효성에 대해선 회의적입니다.
예를 들어, 작업중지권이 “급박한 위험의 우려”까지 확대된 건 진전이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장벽이 많습니다. 작업을 멈추면 일이 중단되는데, 이 기간이 무급이면 노동자 입장에서는 권리를 쓰기가 쉽지 않습니다. 민주노총은 “안전조치 미비, 폭염·폭우 같은 악천후, 고객 폭언·폭행 등도 작업중지 사유로 명시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하청 노동자의 경우, 작업중지 기간 동안 임금 보전과 하청업체 손실 보전까지 포함돼야 권리가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거죠.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제도는 사실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현장에서는 거의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위촉만 하고, 실제 활동은 못하게 하는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한국노총은 “위촉 자체보다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하는 게 핵심”이라고 강조합니다. 지금처럼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만으로는 감독관들이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게 노동계의 시각입니다.
3. 경제적 제재 강화, 기업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경영계 반발이 상당히 거셉니다.
이번 대책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이 바로 과징금과 영업정지 강화인데요. 연간 3명 이상 사망하면 영업이익의 5% 이내, 최소 30억 원을 과징금으로 부과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건설사 같은 경우에는 영업정지, 재발 시 등록말소까지 가능하게 했습니다. 또 공공사업 입찰 제한도 지금은 ‘동시에 2명 이상 사망’일 때만 적용되는데, 앞으로는 ‘연간 다수 사망’으로도 확대됩니다.
경총은 “이건 기업의 존폐를 결정짓는 수준”이라고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중소기업이나 협력업체까지 줄줄이 피해를 입고, 국가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겁니다. 특히 경영계는 “지금도 중대재해처벌법 때문에 기업이 위축돼 있는데, 여기에 또 다른 규제를 얹으면 투자가 빠져나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안전 설비 투자 여력이 부족한데, 제재까지 강화되면 버티기 어렵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4. 결국 이번 대책, 현장에서 실제로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요?
가능성과 한계가 동시에 있다고 봅니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작업중지권 완화와 경제적 제재 강화는 기업과 노동자 모두에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는 신호를 줄 수 있습니다. 반복적인 산재를 그냥 ‘벌금 몇 천만 원’으로 끝내던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기업의 경영 자체를 위협할 정도로 강한 제재가 가능해졌습니다. 이는 분명히 기업들로 하여금 반복적인 산재를 ‘기업 비용’이 아니라 ‘기업 존속’의 문제로 인식하게 만들어 안전에 더 투자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또 노동자들에게는 예방적 차원의 권리를 넓혀주면서, 사고가 터지기 전 단계에서 위험을 차단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줍니다.
하지만 여전히 숙제가 많습니다. 첫째, “급박한 위험의 우려”라는 표현이 너무 추상적이라는 겁니다. 어디까지가 우려인지 기준이 명확히 마련돼야 현장에서 쓸 수 있습니다. 둘째, 작업중지 기간 임금 보전 문제,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결국 노동자는 권리를 행사하지 못합니다. 셋째, 제재는 강화됐지만 지원책은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영세사업장이 안전비용을 감당하지 못해서 쓰러지는 일이 없도록 정부가 보완책을 내놔야 합니다.
5. 끝으로, 노동자와 기업, 그리고 정부에 각각 당부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시죠.
먼저 노동자들에게는, 이제는 권리를 주저하지 말고 활용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위험을 감지하면 작업을 멈추고, 재해 조사 자료를 요구하고, 명예산업안전감독관으로 활동하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기업에게는 안전을 비용이 아니라 투자로 바라보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사고가 나면 과징금과 이미지 손실이 훨씬 더 큽니다. 미리 안전에 투자하면 인력난도 줄이고, 품질과 납기도 지킬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부에게는, 대책이 보여주기식에 그치지 않도록 집행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감독 인력을 늘리고, 세부 지침을 마련하고, 영세사업장 지원책을 병행해야 제도가 실제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 대책은 갈등을 키우는 게 아니라, 갈등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겁니다. 노동자에게는 진짜 사용자와 대화할 수 있는 길을 열고, 기업에는 예측 가능한 룰을 주는 거죠. 현장에서 성실히 교섭하고 예방 활동을 실천할 때, 한국의 노동안전 문화도 한 단계 성숙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