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런베뮤 과로사 사건, '파편화된 고용'의 잔혹한 결말 (2025.12.16)

런베뮤 과로사 사건, '파편화된 고용'의 잔혹한 결말
최근 ‘줄 서서 먹는 베이커리’로 유명한 런던베이글뮤지엄, 이른바 런베뮤를 둘러싸고 심각한 노동 문제가 잇따라 드러나고 있습니다. 청년 노동자의 사망 사건을 계기로 초장시간 노동, 비정규직 남용, 쪼개기 근로계약, 취업규칙 위반 소지, 그리고 사망 이후 회사의 대응까지 사회적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요. 오늘 이 문제를 음성노동인권센터 박성우 활동가와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Q1. 먼저, 런베뮤 사태가 어떤 계기로 공론화됐는지부터 정리해주시죠.
이번 사태는 런베뮤 매장에서 일하던 한 청년 노동자가 주 80시간에 가까운 초장시간 노동 끝에 숨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본격적으로 공론화됐습니다. 고인은 수습기간 동안 월 단위로 쪼개진 근로계약을 맺은 상태에서 사실상 상시적인 장시간 노동을 반복해왔고, 업무 강도 역시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산재 신청 과정에서는 사용자 측이 근로시간 기록 자료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됐습니다. 이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뒤, 단순히 개인의 비극으로 치부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문제의식이 확산됐고, 연구자와 언론이 런베뮤의 고용 구조와 취업규칙, 근로계약서를 들여다보게 되면서 그동안 가려져 있던 노동환경 전반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습니다.
Q2. 연구 보고서에서는 런베뮤의 고용 구조를 ‘파편화된 고용’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런베뮤의 고용 구조는 겉으로 보면 ‘일자리가 많은 회사’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엘비엠의 전체 직원 수는 약 750명으로, 이디야커피나 메가커피보다도 큽니다. 하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상황은 정반대입니다. 전체 노동자의 97%가 비정규직으로, 대부분이 단기·수습·기간제·월 단위 계약 형태로 고용돼 왔습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노동자가 장기적으로 일자리를 유지하거나 숙련을 쌓기 어렵고, 언제든 교체 가능한 인력으로 취급되기 쉽습니다. 실제로 고용보험 통계를 보면, 인력 유입보다 이탈 속도가 훨씬 빠르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고용 규모는 커졌지만 안정성은 오히려 떨어진 것입니다. 이처럼 고용이 잘게 쪼개지고 불안정해진 상태를 연구자는 ‘파편화된 고용’이라고 표현했습니다.
Q3. 임금과 복지 수준을 동종업계와 비교한 결과도 충격적이었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었습니까?
임금과 복지 지표는 런베뮤 고용의 질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디야커피의 경우 직원 1인당 연간 급여가 약 4,100만 원, 메가커피는 약 3,500만 원 수준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런베뮤는 1인당 급여가 약 2,000만 원에 불과했습니다. 단순히 매장 노동 중심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한 격차입니다. 퇴직급여 역시 이디야가 600만 원, 메가커피가 270만 원인 데 비해 런베뮤는 113만 원 수준이었고, 복리후생비는 이디야 562만 원, 메가커피 254만 원에 비해 런베뮤는 74만 원에 그쳤습니다. 교육훈련비 역시 1인당 7천 원으로 사실상 교육 투자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고용 규모는 가장 크지만, 임금과 복지는 업계 최저 수준인 전형적인 저비용·고회전 고용 모델이 작동해온 셈입니다.
Q4. 취업규칙과 근로계약서에서도 위법 소지나 문제적 조항들이 다수 발견됐다고요.
네. 취업규칙과 근로계약서를 보면 노동자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조항들이 여러 곳에서 확인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업무상 부득이한 경우’ 출근을 명령할 수 있도록 한 규정입니다. 연장근로와 휴일근로는 원칙적으로 노동자 동의가 필요하지만, 이런 모호한 표현은 사용자 판단에 따라 무제한적인 동원을 가능하게 합니다. 해고와 징계 조항 역시 채용결격 사유와 해고 사유를 사실상 동일하게 두고, 절차에 대한 구체적 규정 없이 사용자 재량을 넓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감정노동이 핵심인 업종임에도 고객응대 노동자 보호 조치가 취업규칙에 반영돼 있지 않았고, 유산·사산휴가 역시 법 개정 내용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 여성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컸습니다. 회사는 개선 작업 중이라고 밝혔지만, 이미 시행 중인 법조차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책임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Q5. 청년 노동자 사망 이후 회사의 대응 역시 논란이 됐습니다. 어떤 점이 가장 문제였나요?
회사 측은 유족과의 합의 과정에서 장시간 노동과 과로 책임을 인정하고, 근로시간에 대해 더 이상 다투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합의 직후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에서는 “주 80시간 근무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사실상 과로사를 부인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동시에 사건 경과를 정리한 온라인 문서에 대해 삭제를 요청하며 여론 관리에 나선 정황도 확인됐습니다. 유족은 아들의 죽음이 더 이상 소비되길 원치 않아 합의에 응했는데, 그 취지와 배치되는 대응이 이어지면서 회사의 진정성에 대한 의문이 커졌습니다. 합의와 외부 메시지가 따로 노는 모습은 사회적 신뢰를 스스로 훼손한 셈입니다.
Q6. 일각에서는 런베뮤를 ‘빙산의 일각’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평가가 나오는 걸까요?
런베뮤의 문제는 특정 기업 하나의 일탈로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외식·카페·베이커리 업계 전반에는 장시간 노동, 쪼개기 계약, 비정규직 남용, 감정노동 방치가 구조적으로 자리 잡아 왔습니다. 빠른 매장 확장과 브랜드 성장, 자본 매각 과정에서 비용을 줄이기 가장 쉬운 대상이 노동자가 돼 왔고, 런베뮤는 그 구조가 극단적으로 드러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청년 노동자의 죽음이 없었다면, 이런 현실은 계속 가려져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한 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업계 전반의 구조를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로 읽혀야 합니다.
Q7. 마지막으로, 이 사태가 어떤 방향으로 마무리돼야 한다고 보십니까?
회사는 이미지 관리나 책임 회피에 머물 것이 아니라, 고인의 죽음에 대해 분명한 책임을 인정하고 약속한 합의를 존중해야 합니다. 동시에 파편화된 고용 구조를 개선하고, 상시 업무 노동자에 대한 고용 안정, 임금과 복지의 실질적 개선에 나서야 합니다. 정부와 노동당국 역시 런베뮤 한 곳에 그치지 않고 동일·유사 업종 전반에 대한 근로감독을 강화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 또한 ‘핫플’과 ‘성공한 브랜드’ 뒤에 놓인 노동을 함께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맛있는 빵과 세련된 공간은 누군가의 과도한 노동 위에 세워져서는 안 됩니다. 런베뮤 사태가 외식·서비스업 노동환경을 근본적으로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