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아리셀 참사 1년, 비극은 해결됐나(2025.07.08)
아리셀 참사 1년, 비극은 해결됐나
지난해 6월 24일, 경기 화성시의 리튬 배터리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대형 폭발·화재 사고가 발생한 지 어느덧 1년이 되었습니다. 이 사고로 23명의 작업자가 목숨을 잃었고, 8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희생자 대다수는 불법 파견·도급 형태로 고용된 이주노동자들이었습니다. 오늘 <공정사회>에서는 참사 1주기를 맞아, 유가족과 현장 목소리를 중심으로 이 비극의 본질과 책임,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를 심층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2024년 6월24일 오전 10시30분께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에 있는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화재가 난 장소는 아리셀의 총 11개 건물동 가운데 리튬 1차 전지를 검수하는 3동 2층이었고, 사건 당시 3동 2층에는 노동자 43명이 일하고 있었습다. 이 사고로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습니다. 희생자 23명 가운데 18명은 외국 국적을 가진 이주노동자였습니다.
사고 당일 아리셀은 리튬 배터리 양극재 생산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무리한 속도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 전날에도 소규모 폭발 사고가 발생했지만, 납기일을 맞춰야 한다는 압박 아래 현장 점검이나 설비 보강 없이 작업이 재개됐습니다. 화재 발생 전 리튬 분말이 공기 중에 노출되며 일으킨 첫 폭발은 ‘경고 신호’였지만, 원청과 하청 어디에서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결국 폭발로 인해 순식간에 유독가스가 퍼지며 23명이 한 장소에서 질식·화염에 희생됐습니다. 화재 진압까지 꼬박 3시간이 걸렸습니다.
2. 현장에 방치된 위험 요소는 무엇이었습니까?
아리셀 공장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위험성 평가’ 심사를 통과해 우수사업장으로 선정되기도 했지만, 정작 현장은 미흡 그 자체였습니다. 리튬 화재는 일반적인 소화기로는 진화할 수 없음에도 금속 화재에 대응할 수 있는 전용 소화기는 한 대도 없었습니다. 밀폐 공간에서 발생한 리튬 분진·유증기를 외부로 배출할 환기덕트도 전무했습니다.
심지어 비상구 문은 정규직만 열 수 있도록 잠금장치가 설치돼 있었고, 비정규직·이주노동자는 내부에서 문을 열 수 없었습니다. 기본적인 안전·화재 대응 매뉴얼도 사내망에만 올라가 있었고, 현장 노동자 누구도 그 내용을 숙지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용역업체를 통해 아리셀에서 일한 노동자들을 제대로 된 현장 숙지조차 하지 못한 채 업무에 투입되었다가 변을 당했습니다.
3. 피해자들 중 다수가 이주노동자인데 그로 인한 차별이 존재했다고 들었습니다.
네. 대피로 안내조차 받지 못한 상태로 일하다가 숨진 이주노동자들 중 대다수는 외국국적동포 체류자격을 가진 분들이었습니다. 단순노무직에서 일할 수 없는 분들이었지만 아리셀 공장에서 리튬 배터리를 포장·운반하는 업무에 투입됐고 이는 이후에 사업주가 보상액을 줄이기 위한 핑계로 사용됐습니다. 희생자들에게 체류자격에 부합하지 않는 일을 지시한 것은 사업주인데, 그 일을 했다는 이유로 산업재해 사망에 따른 보상금을 깎으려 한 것입니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했을 때 보상액은 내국인보다 현저히 낮게 산정됩니다. 체류자격이 만료하는 시점 이후부터는 귀국한 것으로 상정해 해당 국가 평균 임금을 기준으로 일실수익을 낮게 산정하기 때문입니다. 영주권·귀화 등을 통해 체류를 연장해 한국에 계속 거주할 가능성은 법·제도에서 철저히 배제된 셈입니다.
경기도가 참사 1주기를 맞아 낸 백서 ‘눈물까지 통역해 달라’는 참사 배경에 비정규직·이주노동에 대한 구조적 차별·혐오가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참사 이후 화성시청에 분향소를 마련하자 화성시 관계자들이 '왜 우리 세금으로 남의 나라 사람을 추모해야 하냐'고 따졌다고 합니다. 결국 희생자들의 인권과 노동자 권리가 실현되지 못한 이유는 이주노동자들의 목숨을 가벼운 것으로 여기고 이를 보호하지 않아도 문제 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들어 온 한국 사회의 구조적 인식과 맞물려 있습니다.
4. 정부의 책임 방기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아리셀 사고 직전까지 고용노동부는 이 사업장에 대한 산업안전감독을 단 한 차례도 실시하지 않았습니다. 위험성 평가 서류를 직접 확인하지 않고 ‘제출만 하면 통과’했고, 이를 근거로 아리셀을 ‘우수사업장’으로 선정했습니다. 또한 참사 초기 아리셀 측은 사망한 이주노동자들은 도급 계약에 의해 채용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곧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고, 불법파견을 감독하지 않은 책임은 노동부에게 있음이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노동부는 유가족이 연 1주기 토론회에 참석해 "잘 듣고, 잘 전달할 것이며, 고민해 보겠다"라고만 했습니다.
국방부는 아리셀의 배터리 성적 조작 사실을 알고도, 군납 물량 일정을 이유로 납품을 재촉했습니다. 계약 취소 한 번 하지 않았고 이는 재판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불법파견 또한 그렇습니다. 이처럼 노동부·국방부 모두 사고 책임을 외면했고, 재발 방지 대책조차 ‘맹탕 정책’에 그쳤습니다.
윤석열 정부에서 발표된 대책 80%가 참사 이전에 이미 추진되던 사업이었습니다. 전지공장 에 대한 공정안전관리 고시 개정은 이뤄졌지만, 단 한 건도 집행되지 않았습니다. ‘위험성 평가 고시 개정’ 또한 100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해, 사고 취약 사업장엔 아무런 영향이 미치지 못했고 화재·폭발 대피 교육은 ‘실시 여부’만 확인할 뿐, 교육 내용·질은 전혀 강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2024년 1분기 산재 사망자 78명에서 2025년 1분기엔 83명으로 늘어나 아리셀 참사 이후에도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경우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유가족과 전문가들은 노동안전 전담 기구 신설과 지방노동관의 인력·예산 대폭 증원을 통한 산업재해 대응 체계 전면 개편, 원청 책임 명문화 및 처벌 강화, 이주노동자 권리 보장에 따른 불법 파견·하도급 구조 해소, 다국어 안전 교육·통역 지원 상시 제공, 노동상담 창구 확대, 민주노총·이주노동자 대표 포함한 노사정 협의체 정례화 등이 핵심 과제로 요구했습니다.
5. 법적 책임과 재판 현황은 어떻습니까?
아리셀 대표 박순관 씨는 중대재해처벌법·산업안전보건법·파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으며,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 사업주 구속기소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상징적입니다. 2025년 2월 보석으로 석방된 뒤 현재 불구속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이 재판이 단순히 사업주 책임을 묻는 수준을 넘어서, 한국 사회가 ‘사업주의 의무’와 ‘노동자의 권리’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지 물음을 던지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6. 유가족의 간절한 호소와 정치권에 대한 요구는 무엇입니까?
최근 세월호·이태원·오송·제주항공 참사 유가족을 면담하는 이재명 대통령의 일정에 아리셀 유가족은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아리셀 참사는 사회적 참사가 아닌 산재 참사라는 이유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리셀 참사로 남편을 잃은 최현주 <충북인뉴스> 기자는 최근 자신의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호소하며 이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정치권이 ‘힘없는 자’, ‘약한 자’들의 죽음을 이용해 ‘인기몰이’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부디 국가의 잘못으로 죽임을 당한 고인과 유가족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메아리조차 돌아오지 않는 절망을 더 이상 느끼지 않도록 해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지금 당장 모든 것을 해결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수십 년간 누적된 문제를 제발 돌아봐 주시고, 관계부처에 성찰과 행동을 요구해 주시기 바랍니다."
1년 전의 비극을 결코 잊지 않고, 그 교훈이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초석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오늘 <공정사회>는 아리셀 참사 1주기가 던지는 질문을 여러분께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