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14개월 동안 12명 사망... 대불산단의 '죽음의 행렬' 멈춰야(2026.03.03)

14개월 동안 12명 사망... 대불산단의 '죽음의 행렬' 멈춰야
전남 영암 대불국가산업단지가 이제 일터가 아닌 '거대한 무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14개월 동안 이곳에서만 12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특히 지난 2월 말에는 불과 나흘 간격으로 캄보디아와 베트남 출신의 청년 노동자들이 연달아 사망하는 참혹한 일이 벌어졌는데요. 오늘은 이 참사의 주범으로 지목된 '위험의 이주화'와 당국의 무능을 고발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의 목소리를 음성노동인권센터 박성우 활동가와 함께 살펴 보겠습니다.
Q1. 최근 대불산단에서 나흘 만에 또다시 사망 사고가 발생하며 지역 노동계가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2월 말에 발생한 연쇄 사고의 구체적인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먼저 지난 2월 28일 오전 11시 43분경, 대한조선 제1공장에서 발생한 사고를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캄보디아에서 온 서른다섯 살의 청년 노동자 A씨가 작업을 하던 중 1톤 무게의 육중한 선박 블록에 깔려 숨지는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불과 나흘 전인 2월 24일 오전, 조선소 플랜트 사업장에서 서른일곱 살의 베트남 이주노동자가 질식으로 목숨을 잃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입니다.
이번 블록 전도 사고는 전형적인 '후진적 재해'로 분류됩니다. 중량물을 조립하고 고정하는 '취부' 작업 시에는 작업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크레인으로 블록을 견고하게 잡고 있어야 하며, 2인 1조 작업 원칙이 반드시 준수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러한 기본적인 안전 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결국 1톤이 넘는 쇳덩이가 넘어지면서 한 청년의 코리안 드림을 처참히 짓밟았습니다.
Q2. 특히 2월 24일 베트남 노동자의 사망 사고 직전에, 이미 다른 노동자가 쓰러졌음에도 작업을 강행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당시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날의 기록을 보면 우리 사회의 비정함이 극에 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베트남 노동자가 쓰러지기 불과 45분 전, 같은 장소에서 중국 출신의 이주노동자가 먼저 쓰러지는 전조 현상이 있었습니다. 상식적인 사업장이라면 동료가 쓰러진 즉시 작업을 중단하고 정밀 안전 점검을 실시하여 추가 위험을 차단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불산단의 공장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동료가 생사의 기로에서 병원으로 이송되는 와중에도 나머지 노동자들은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는 현장에 그대로 방치된 채 작업을 계속해야만 했습니다. 생산 물량을 맞추지 못하면 패널티를 물어야 하는 다단계 하청 구조 속에서, 이주노동자의 생명은 기계를 돌리기 위한 부속품보다 못한 취급을 받은 것입니다. 결국 45분 뒤,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싸늘한 주검이 되어야만 그 비정한 기계는 멈춰 섰습니다.
Q3. '위험의 외주화'를 넘어 '위험의 이주화'가 대불산단을 지배하고 있다는 단체들의 지적이 뼈아픕니다. 이주노동자들이 이토록 산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현재 대불산단은 원청 기업이 져야 할 안전 책임은 하청업체로, 그 위험은 다시 열악한 환경의 이주노동자들에게 전가되는 구조가 고착화되어 있습니다. 내국인 노동자들이 기피하는 가장 위험하고 고된 공정은 어김없이 이주노동자들의 몫이 되지만, 그들에게 주어지는 안전 장비나 정보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특히 안전 교육의 실태는 참담함을 넘어 기만적입니다. 언어 장벽 때문에 위험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작업에 투입되는 경우가 많으며, 업체들은 사고 발생 시 자신들의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형식적인 서명만 받는 식으로 '알리바이'를 만드는 데 급급합니다. 위험을 감지해도 비자 문제나 불이익이 두려워 목소리를 낼 창구가 없는 이들의 처지를 자본이 철저히 악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비용 절감을 위해 안전을 뒷전으로 미룬 기업의 탐욕이 빚어낸 '사회적 타살'입니다.
Q4. 이번 사태를 방치한 고용노동부와 전라남도 등 행정 당국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비판도 거셉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직무유기가 발생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고용노동부의 안전 관리 감독 체계는 사실상 완전히 붕괴된 상태입니다. 나흘 전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제대로 된 대책을 세웠다면 연이은 죽음은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노동부는 실효성 없는 '현장 점검'이라는 말 뒤에 숨어, 사람이 쓰러져도 기계가 계속 돌아가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묵인해왔습니다.
산단 관리의 주체인 전라남도 역시 비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이 어떤 환경에서 죽어가고 있는지 철저히 외면하며 '복지부동'으로 일관해온 전라남도의 무책임이 이번 참사를 키웠습니다. 지역 내에서 14개월 동안 12명이 죽어나가는데도 근본적인 대책 없이 홍보에만 열을 올리는 지자체의 모습에 지역 노동자들은 깊은 절망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Q5. 현재 지역 시민사회 단체들이 정부와 지자체에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핵심 대책들은 무엇입니까?
지역 시민사회 단체들은 현장의 분노를 담아 다섯 가지 핵심 요구사항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먼저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 김영록 전라남도 도지사는 반복되는 중대재해와 무능한 대처에 대해 도민과 이주노동자 앞에 즉각 공식 사과하고 책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둘째, 사망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을 포함한 대불산단 전 사업장에 대해 형식적인 조사가 아닌 ‘특별종합안전점검’을 즉시 실시하고 강력한 강제 수단을 동원해야 합니다.
셋째, 이주노동자 보호를 위한 실질적인 안전 대책을 즉시 마련하고, 넷째, 중대재해와 관련된 사업주를 강력하게 처벌하여 일벌백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노동조합과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대불산단 노동안전보건 제도개선 협의체’와 ‘이주노동자 인권보호 실무협의회’를 상설 구성하여 상시적인 감시와 제도적 개선을 도모해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하고 있습니다.
Q6. 끝으로, 대불산단에서 반복되는 이 비극을 멈추기 위해 우리가 직시해야 할 이번 사태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까요?
대불산단의 연속적인 죽음은 결코 하는 일이 위험해서 생긴 사고가 아닙니다. 이는 기업의 탐욕, 그리고 노동자의 생명보다 이윤과 속도를 우선시한 우리 사회의 묵인이 합작해 낸 ‘구조적 살인’입니다. 특히 우리가 필요해서 불러들인 이주노동자들을 인간이 아닌 ‘소모성 부속품’으로 취급해 온 비정한 태도가 이들을 사지로 몰아넣었습니다.
이주노동자의 목숨은 결코 저렴하지 않습니다. 이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조선업의 영광은 사상누각일 뿐입니다. 대통령은 ‘사람이 죽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데 모든 역량을 쏟겠다고 천명했지만 현장의 환경 변화는 지지부진할 뿐입니다. 동료의 죽음을 목격하며 일해야 하는 잔인한 현장을 바꾸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의 양심 또한 대불산단의 차가운 철판 아래 함께 깔려버릴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