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28살 청년 하청노동자의 죽음... 계속 반복되는 제2의 김용균들(08.04)

28살 청년 하청노동자의 죽음... 계속 반복되는 제2의 김용균들
매출 4조 8천억 원, 영업이익 2천억 원. 글로벌 자동차 부품 시장을 선도하며 눈부신 성장을 자랑하는 대기업 HL만도의 화려한 성적표입니다. 하지만 이 거대한 부와 명성 밑바닥에는, 비용 절감이라는 미명 아래 가장 위험하고 어두운 곳으로 내몰려야 했던 스물여덟 살 청년 하청노동자의 피맺힌 죽음이 깔려 있습니다.
오늘은 지난 7월 22일, HL만도 평택공장에서 발생한 고(故) 김승모 님의 억울한 산재 사망 사고의 전말과,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진상 규명을 외치는 유족들의 절규, 그리고 사람의 목숨보다 공장 가동을 우선시하는 사측의 비정한 민낯에 대해 음성노동인권센터 박성우 활동가 모시고 짚어보겠습니다.
Q1. 참으로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는데요. 먼저 지난 7월 22일, HL만도 평택공장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구체적인 사고 경위부터 설명해 주시죠.
지난달 22일 낮 12시 49분경, 경기 평택시에 위치한 HL만도 공장에서 하청업체 소속 스물여덟 살 고(故) 김승모 님이 기계에 끼여 숨지는 끔찍한 참변이 발생했습니다.
고인은 금속을 깎고 다듬는 거대한 공작기계인 '머시닝센터(MCT)' 12호기 내부에 직접 들어가 유지보수 점검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설비 점검을 무사히 마치고 원래 다음 날로 예정됐던 다른 설비 점검에 투입된 상황이었죠. 그런데 작업자가 기계 안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외부에서 기계가 작동하면서 참혹한 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고인은 지병으로 일하기 어려운 아버지를 대신해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하며 가계를 묵묵히 책임져 온 착실한 청년이었기에, 그 사연이 알려지며 주위의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Q2. 작업자가 기계 안에 들어가서 수리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외부에서 기계가 멋대로 작동할 수 있는 건가요? 상식적으로 현장의 안전 관리에 대단히 치명적인 구멍이 있었던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이 사고는 우연히 발생한 실수가 아니라 상식 밖의 불법과 안전 불감증이 빚어낸 명백한 '기업 살인'입니다. 가장 치명적인 원인은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인터락(Interlock)'조차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인터락은 기계 문이 열리거나 사람이 내부에 들어가면 자동으로 전원이 차단되어 기계가 멈추게 만드는 생명줄과 같은 장치입니다. 놀랍게도 2016년에도 이 공장에서 유사한 사고가 발생해 인터락 미설치 기계의 위험성이 강하게 제기되었지만, 회사는 이를 철저히 묵살했습니다.
게다가 산업안전보건법이 규정한 기본 중의 기본 조치들이 현장에서는 완벽하게 무시되었습니다. 기계 전원을 차단하고 조작을 금지하는 '가동정지 안전표시줄'이나 표지판도 없었고, 현장 반경을 통제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가장 경악스러운 것은 당시 11호기와 12호기에서 두 개의 다른 하청업체가 동시에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음에도, 원청의 현장 감독이나 안전관리자는 아무도 현장에 입회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작업 전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안전점검회의(TBM)조차 생략된 채, 청년 노동자는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로 죽음의 기계 속으로 내몰렸던 것입니다.
Q3. 아들을 하루아침에 잃은 유족들의 슬픔과 분노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기자회견에서 어머님의 피 끓는 절규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는데요.
네, 사고 발생 후 유족들은 무려 12일이 넘도록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채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지난 29일 금속노조 기자간담회에 참석하신 고인의 어머님께서는 분노와 눈물로 원청의 책임을 강하게 성토하셨습니다.
어머님은 "눈에 보이는 알량한 이익 때문에 불법을 묵인하고, 한 사람의 목숨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저들이 법 앞에서 엄중한 처벌을 받길 원한다"며 울분을 토하셨습니다. 이어 "만도라는 그 큰 대기업이 어찌 저런 끔찍한 환경 속에서 우리 아이에게 작업을 하라고 등 떠밀 수 있느냐, 저런 환경인 줄 알았다면 결코 일하러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며 가슴을 쳤습니다.
무엇보다 어머님의 말씀 중 가장 뼈아픈 대목은 "이건 내 아들의 운이 나빠서가 아니다. 단지 우리 아들뿐만 아니라 어떤 누구라도 저런 환경에서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20대, 30대 청년들이 이렇게 허망하게 죽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는 외침이었습니다. 유족들은 단순한 합의금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책임자인 조성현 HL만도 대표이사의 공식 사과, 투명한 사고조사단 구성,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엄정한 수사와 처벌을 절박하게 요구하며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Q4. 그런데 이렇게 참담한 사망 사고가 발생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원청인 HL만도 측은 근본적인 재발 방지 대책은커녕 공장을 재가동하려 해 노조와 심각한 마찰을 빚고 있다면서요?
그 부분이 지금 현장 노동자들과 유족들을 두 번 죽이는 HL만도의 비정한 민낯입니다. 사고 직후 고용노동부의 작업 중지 명령이 내려진 상태임에도, 회사는 노조가 요구하는 근본적인 안전 대책 수립은 거부한 채 오로지 '생산 라인 재가동'에만 매달리고 있습니다.
사고 불과 엿새 뒤인 7월 28일에는 외부에서 대체 생산 물량을 공장으로 반입하려다 노조에 제지당했고, 다음 날 새벽에는 눈을 피해 관리자들을 생산 라인에 은밀히 투입해 기계를 돌리려 하는 어처구니없는 촌극을 벌였습니다. 심지어 휴가 기간인 8월 1일부터 사흘 동안에는, 노사 합동 점검 이후에 진행하기로 했던 '인터락 설치 작업'을 하청업체 3곳을 투입해 기습적으로 강행하려다 적발됐습니다. 인터락이 없는 기계 132대에 안전장치를 벼락치기로 대충 달아놓고 어떻게든 빨리 공장을 돌리겠다는 탐욕스러운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Q5. 말씀을 듣다 보니 이 비극의 이면에는 결국 비용 절감을 위해 위험을 하청에 떠넘기고, 노동자를 부속품 취급하는 우리 산업의 구조적인 모순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확합니다. 이 사건은 단일한 사고가 아니라 원청 대기업의 만성적인 횡포가 누적된 필연적 결과입니다. HL만도 평택공장은 2013년 이후 정규직 신규 채용을 사실상 끊어버렸습니다. 현장 노동자들의 평균 연령이 53.2세에 달할 정도로 인력이 노령화되었고, 이들은 과도한 노동 강도에 시달려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틈새를 메우고 가장 위험하며 더러운 업무를 수행하는 역할은 철저히 사내하청과 외주업체 청년 노동자들에게 떠넘겨졌습니다. 심지어 노조 측 주장에 따르면, 이번에 사고를 당한 고인 역시 공식적인 도급계약서조차 확인되지 않는 상태에서 원청의 상시적인 작업 지시를 받으며 무리한 일정 속에 투입되었다는 의혹이 매우 짙습니다. 하청 노동자들의 안전과 생명은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이윤 극대화라는 목표 아래 노동자들을 죽음의 컨베이어 벨트로 끊임없이 밀어 넣는 잔혹한 구조입니다.
Q6. 마지막으로 구의역 김 군, 태안화력 김용균 님에 이어 또다시 스물여덟 청년 노동자가 생때같은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참혹한 사슬을 끊어내기 위해 수사 당국과 우리 사회가 시급히 나서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요?
우선 수사 당국인 고용노동부와 경찰, 검찰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HL만도의 명백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불법 파견, 엉터리 도급 계약 의혹에 대해 성역 없는 압수수색과 철저한 수사를 진행해야 합니다. 꼬리 자르기식으로 현장 하청업체 소장 몇 명을 처벌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원청 대표이사에게 '중대재해처벌법'을 엄격하고 무겁게 적용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책임을 최고 경영자에게 직접 묻는 선례를 남겨야 합니다.
글로벌 기업을 자처하는 HL만도는 비겁하게 협력업체 뒤에 숨거나 휴가철을 틈타 기습적으로 공장을 가동하려는 얄팍한 꼼수를 당장 멈춰야 합니다. 대표이사가 직접 유족 앞에 무릎 꿇고 사과하며, 노조가 요구하는 '인터락 전수조사', '외주작업 안전관리 수칙 마련' 등 근본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즉각 수용해야 합니다. 위험을 외주화해 원청은 이윤을 독식하고 피와 죽음은 하청에 떠넘기는 이 야만적인 고리를 우리 세대에서 끊어내지 못한다면, 내일은 또 다른 20대 청년이 죽음의 문턱을 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