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인권교육] 서원대IVF_노동인권 현재, 그리고 실천 과제(2026. 4. 2.)
육아휴직을 마무리하고, 복직을 앞두고 있던 지난 2월에 영등포산업선교회 손은정 총무 목사님을 통해 강의 요청을 받았습니다. 청주에 있는 서원대학교 기독교 동아리 '서원대IVF'에서 노동인권 강의를 해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1년 간 활동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육아에 전념해왔기 때문에 감(感)도 많이 떨어지고, 말도 어버버 할 것 같았지만, 하겠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노동인권에 관심을 갖는 20대 청년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니까요. (물론 서원대학교가 저희집 바로 뒤에 있다는 사실도 꽤 컸습니다.ㅎ)
말로만 들어보던 'IVF'라는 동아리가 궁금해졌습니다. 찾아보니 한국기독학생회IVF는 '캠퍼스와 세상 속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라는 사명을 갖고 다양한 사역과 활동을 펼치는 동아리더군요. 신학생 시절 IVF의 출판사 IVP의 책들을 몇 권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공통의 지점을 찾기 위해 '서원대학교'에 대해서도 좀 찾아보았습니다. 종종 산책하고 철봉하러 가던 캠퍼스였지만 정작 서원대학교가 어떤 학교인지, 이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노동조합'을 키워드로 검색해보니, 전국대학노동조합 서원대학교지부가 있었고(지금은 없는 것으로 보임) 교수노조가 학교 측과 임금, 단체협약을 체결한 소식이 비교적 최근의 일로 검색되었습니다.(다시 찾아보니 서원대학교조교노동조합도 임단협을 체결했네요.) 2011년에 공공운수노조 평등지부 서원대학교분회가 청소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해 용역업체와 임단협을 했지만, 업체가 이를 외면해 총장에게 해결을 요구하는 집회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캠퍼스에 30분 정도 일찍 도착해서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육아휴직 기간에는 자주 오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간 캠퍼스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펴있었습니다. 오래된 노동조합 팻말과 빛바랜 창문 스티커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강의를 하기로 한 제2학생회관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아홉 분의 학생들이 모였습니다. 처음 온 분들이 가장 맨 앞자리에 앉아서 당황했습니다. 강의하는 자리와 거리가 꽤나 가까웠거든요. 지역 노동자들 대상으로 할 때도 그렇고, 노동인권 교육을 시작할 때 거의 항상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노동인권 교육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노동인권 교육을 들으신 분은 손을 들어달라고 했는데,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질문을 합니다. 왜 우리는 교육을 듣지 못했을까요? 이 질문에 답을 떠올려보는 것이 저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적 세계관이 전부인줄로만 알고 살았던 제가 노동인권 활동을 하게 된 이야기를 먼저 들려주었습니다. 20대 초반 새터교회와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를 만나고, 그 당시 최장기 농성을 벌이던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의 투쟁을 알게되는 과정, 대학을 졸업하고 군입대를 앞둔 시점에서 참여한 영등포산선의 <발바닥으로 읽는 성서> 현장심방 프로그램 이야기. 그곳에서 만난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 이날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존재로서 저에게 가르쳐준 것은 '해고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노동자는 투쟁할 수 있다'는 단순한 진실이었습니다. 이 단순한 진실 앞에 저는 무참하게 무너졌고, 많이 눈물을 흘렸었습니다. 그제서야 이 사회를 지탱하고, 삶에 필수적인 것들을 만들어내는 노동자들의 존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군 훈련소 수료식날 생중계 되던 세월호 참사... 이후 진로를 고민하다가 충북 음성군에 독립하고 건설 일용직으로 일하고, 양계장에서도 일하다가 이곳 노동인권센터에서 활동하게 된 썰을 풀었습니다. 이전 강의 때 이렇게까지 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는데, 이날 강의에서는 의도적(?)으로 제 얘기를 했더랍니다.
본격적으로 지난 2~30년 동안의 한국 사회의 변화와 지금의 요동치는 정세를 노동인권의 관점에서 설명을 시도했습니다. 노동인권의 현재를 크게 네 가지 특징으로 보았습니다.
① 단기 일자리 증가... '좋은 일자리'는 어디에?
② 청년/여성 노동 조건은 더욱 열악
③ 간접고용 구조 심화... 권리는 쪼개지고, 위험은 전가된다
④ 산업의 고도화, 화학 사고, 기후 재난
매년 비정규직 통계를 내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 따르면, 지난 20여년 간 비정규직 비중은 서서히 줄어들고 있습니다만, 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 등 비정규직의 양태는 날로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여러 비정규직 형태 중 꾸준히 늘어나는 한 가지는 '단시간' 일자리입니다. 비정규노동센터는 쪼개기 계약, 부업 등이 늘어난 결과로 보고, 노동시장 불안정성을 해소하기 위한 사업주들의 전략으로 진단했습니다. 전체 비정규직 비중은 줄어드는데, 20대 비정규직은 역으로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성의 비정규직 비중은 잘 나아지지 않고 있고, 성별 임금 격차는 더 늘어났습니다.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이 닥쳐왔을 때 가장 먼저 집으로 돌려보내지는 사람들은 여성들이었습니다.
<원청업체-사내하도급업체-직업소개소>로 이어지는 간접고용 구조는 심화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2017년 신세계푸드 음성공장에서 벌어졌던 노동법 사각지대, 노동인권 침해 사안은 7년 뒤인 2024년 음성군 대소면 대풍산단에 위치한 건국우유 공장에서도 똑같이 재현되었습니다. 그 사이 음성지역 직업소개소는 2배가 늘어 약 100개의 직업소개소가 운영 중에 있습니다.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의 죽음은 2024년 아리셀 리튬배터리 생산 공장에서의 파견업체 소속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으로 재현되었습니다. 노동자들의 존엄과 생명을 지키는 권리가 간접고용 시스템 속에서 찢겨나가고 있습니다.
요즘 각광받고 있는 반도체, AI 산업의 이면에 대해서도 설명했습니다.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을 짓기 위해서는 엄청난 전기와 물을 사용하고 엄청나게 넓은 땅을 전용해야 합니다. 강의일 기준으로 하루 전날 있었던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재검토와 초고압 송전탑 건설 반대 충북대책위원회> 출범대회 소식도 공유했습니다. 한편,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 수백, 수천 종의 화학물질을 사용하는데 따르는 치명적인 위험은 익히 알려져 있으나,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지 않습니다. 반도체 전자산업 산재 사망노동자들의 사례들과 반올림 활동을 소개했습니다. 최근에는 반도체 노동자들의 정신 건강에 대한 실태조사들이 이루어지고 있고,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고대역폭메모리(HBM) 반도체 실적 부진을 극복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가 자살한 고 김치엽님의 이야기도 들려주었습니다.
위 내용들을 종합하면서, 이와 같은 특징들은 짧게는 97년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의 문제로, 길게는 200여 년간 지속, 발전해온 자본주의 체제의 발전 단계의 한계(후기 자본주의)로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 한계는 '기후 위기'로 표현되는, 자연을 파괴하고 수탈하는 자본주의 체제로 인해 지구 환경 부하가 행성적 스케일로 커질대로 커졌다는 것이고, 금융화된 경제 시스템이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습니다. 독점과 불평등을 강화하는 정치/경제 시스템에서 민주주의는 약화될 수밖에 없고, 지역은 수탈당하고, 개인은 경제적으로는 파산당하고, 정치적으로 고립된다고 보았습니다. 이처럼 불안정한 조건에서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은 "자신의 패망을 우회하기 위해 권위주의적이고, 군사적인, 그리고 인종차별적인 전환을 시도한다"는 미켈 볼트 라스무센(<후기 자본주의 파시즘>(2024))의 분석을 인용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중동 전쟁이 이어지고, 확전되고 있는 현실을 보고 있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우리들의 실천 과제를 찾기에 앞서, 20대 청년, 기독교인으로 살면서 겪는 고민과 어려움에 대해 물었습니다. 좋은 일자리가 없고, 앞날이 불안정한 것에 대한 압박감들, 사회 구조가 바뀌어야하는데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무력감을 느낀다는 이야기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실천 과제에 대한 토론으로 이어졌습니다. 캠퍼스와 지역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긴 시간 진지한 태도로 강의 내용을 듣고, 반응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마지막에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는데, 저를 향해 축복해주는 포즈를 취해주셔서 무척 민망하고 부끄러웠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독교적 환대'랄까요. 여러모로 힘을 많이 얻는 시간이었습니다. 복귀를 하고 일, 육아를 병행하면서 쌓인 스트레스와 피로를 한 순간에 날려버릴 정도로.^^ 서원대IVF 동아리원들 반가웠어요. 투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