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강 후기] 2강. 사례로 보는 일터에서의 성차별과 불평등 - 모두의 평등을 위한 성평등한 일터 만들기
작성: 박윤준 활동가
'삶과 노동을 잇는 배움터 이짓'(이짓)의 <모두의 평등을 위한 성평등한 일터 만들기> 기획 강좌 제2강 후기입니다.
국가의 산업발전이 필요할 땐 저임금 노동으로
돌봄이 필요할 땐 다시 '가정으로'
신자유주의 본격화 이후엔 '쉽게 쓰고, 쉽게 자른다'
1강에서 '성평등'이 지배 구조가 '가리고 있는' 현실을 보게만드는 관점임을 배웠습니다. 2강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기간 여성에 대한 수탈, 착취의 역사 그리고 이에 저항했던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살펴보았습니다.

60~70년대 경제 성장의 이면
기억에 남는 대목은 60-70년대 급격한 산업 성장을 이루고 자본주의적 경제 토대를 구축했던 시기에 관한 부분이었습니다. 가발, 의류, 신발 등 노동 집약적인 '경공업'에 종사하였던, '공순이'라고 불리었던 여공,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는 꽤나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의 경제 성장이 '기생 관광'으로 표현되는 섹스 산업에 기반한 측면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1970~80년대 한국의 섹스관광 산업"을 다룬 논문에서 보다 자세한 맥락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한 전략 산업으로서 경공업을 성장시켰고, 1960~70년대 당시 국내 노동자들을 저임금에 살인적 노동환경 속에서 착취 당하였습니다. 미국에 대해서 수출 의존도가 높고, 일본에 대해서는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서 대미 무역 흑자가 대일 무역 적자를 따라가지 못해 한국의 무역수지는 만성적인 적자상태였습니다. 이러한 외채의 압박 속에서 중동에 건설 기술자들을 보내고,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를 보내고, 베트남 전쟁에 군인들을 파병했던 것이죠. 관광 산업은 굴뚝을 세우지 않아도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수단이었고, 그중 여성의 성을 상품으로 내건 기생 관광이 박정희 정권 관광 산업의 핵심이었다는 설명입니다.
아래는 논문의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그럼 박정희 정권에서 관광산업은 어떤 의미였나? (중략) 관광 정책의 핵심은 역시 외화 획득을 목표로 외래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있었다. 외자를 도입해서 수출 중심의 정책을 폈지만 수출입 정책의 만성 적자가 해마다 늘어났던 상황에서 관광업은 블루오션으로 여겨졌다. 즉 외채의 압박을 줄이고 무역 적자의 폭을 줄일 자원을 국내에서 발견한 것이고 바로 기생관광 정책이었다.
(중략) 그렇다면 관광산업의 진행 과정은 어땠나? 관광산업이 전개되었던 과정 역시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계획의 성격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은 경제개발계획 과정에서 미국과 일본의 자본을 대규모로 도입하여 대규모 국가 자본을 창출하고 단계적인 민영화 정책을 통해 국민뿐만 아니라 자본가 계급에 대해서도 엄청난 자율성과 통제력을 확보했다. 관광업 분야도 마찬가지였다.
(중략) 이것이 섹스관광 상품이라는 동일 시장, 동일 품목에 대한 경쟁이 과열되면서 한국의 여행업체들이 앞다투어 저가 관광 상품을 내놓을 수 있었던(혹은 내놓아야했던) 배경이다. 한국 여행사의 사정에 훤했던 일본 여행사들은 경쟁 입찰이라는 방법으로 가장 낮은 금액을 써 낸 여행사를 찜했고 톡톡히 수익을 챙겼다. 저가 관광 상품을 충당하고자 등장해야 했던 것은 질 낮은 서비스, 담합에 의한 토산품 판매(내지는 강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이트 투어’로 요약되었던 요정에서의 기생파티와 호텔에서의 섹스였다. 즉 관광 상품의 가격은 낮게 부르고 그 차액을 충 당하고자 ‘화대’로 가외 값을 불렀던 것이다.
- 권창규,「산업으로서의 관광 속 관광기생의 존재 -1970, 80년대 한국의 섹스관광(‘기생관광’) 산업」(2015) 中
80년대 이후, 여성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986년 전두환 정부 임기 후반부터 1989년 노태우 정부 임기 초까지 기간, 3저 시대(저금리, 저유가, 저달러)가 열리면서 한국 사회는 경제 호황을 누렸습니다. 1987년 민주화 운동과 노동자 대투쟁를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였고, 이로써 정치 부문의 민주화가 일부 이루어졌습니다. 약간의 부침은 있었으나 1997년 IMF 금융 위기가 오기 전까지 경제 성장은 유지되었습니다. 이른바 경제 황금기라고 불리는 시기였고, 사회적인 역동 또한 커지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여성의 삶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여성은 국가의 산업발전이 필요할 때는 저임금 일자리에 할당되었고, 돌봄이 필요할 때는 가정으로 보내졌습니다. IMF 금융 위기 당시 여성이라는 이유로 정리해고를 먼저 당한 사례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일자리를 잃은 이들은 대부분 여성이었습니다.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었는데, 첫째, 대면 서비스직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대부분 여성이었고, 둘째, 돌봄 서비스 중단으로 인한 돌봄 공백을 여성이 메꿔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성들은 남성이 비해 상대적으로 '유연한 노동력'으로 취급되었던 것이고, 여성들의 비정규직 비중이 남성에 비해 훨씬 높은 현실이 이를 방증합니다.
27년째, 아니 28년, 29년째 성별임금격차 꼴찌라니?
2023년 기준 한국이 OECD 회원국 중 성별임금격차가 27년 연속 꼴찌라는 제목의 기사들이 많이 쏟아져나왔습니다. 경향신문에서 별도의 웹페이지를 만들면서 기획 보도를 한 것이 눈에 띕니다. 그래서였을까요. 2023년부터 정부는 공공부문에 '성별근로공시제'를 실시하였습니다. 성별근로공시제는 기업이 채용, 근로, 퇴직 전 과정에서 노동자의 성별 비율과 임금 정보를 공시하는 제도입니다.
찾아보니 2024년에도 여전히 꼴찌. 전 세계 10위권에 들정도로 경제 성장을 이룬 대한민국은 왜 성별임금 격차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걸까요? 한국 자본주의 경제 구조가 가진 고유한 특질이 있는 것일까요? 성장에 대한 압력이 유달리 강하여서? 여성운동이 열심히 싸우지 않아서일까요? 강의를 함께 들은 이들에게 물었고, 여러 생각들을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가부장제가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라는 의견, 여성 운동이 목표로 삼았던 '기회의 균등'이라는 의제가 가진 한계가 있었다는 의견, 성별임금공시제를 민간 부문까지 확대하여 운영하고 있는 영국의 사례와 같이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의견이 기억에 남습니다.
'고용평등 임금공시제'는 임금 격차를 해소할 수 있을까?
4월 3일자 기사를 보니, '고용평등임금공시제'라는 이름으로 법제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로 포함된 '고용평등임금공시제'는 작년 10월부터 성평등가족부가 5차례 간담회를 열어 제도 도입 방향을 논의하였고, 여성노동연대회의에서 최근까지 두 차례에 걸쳐 토론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참고로 여성노동연대회의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여성노동조합,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가 여성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 향상이라는 목표로 구성한 연대체입니다.

위 기사에 따르면, 현재 <남녀고용평등 및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적극적 고용개선조치(AA·Affirmative Action)가 시행되고 있으나, 고용 구조 전반의 성별 격차를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개선하기 위한 체계적인 공시 체계는 미비하다고 합니다. 고용평등 임금공시제는 <양성평등기본법> 개정안에 담길 것으로 보이는데요. 공공부문과 500인 이상 민간기업에 우선 제도를 도입하고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간다는 방침입니다. 공시 대상 기업은 노동조합 혹은 근로자대표의 의견을 들은 뒤 직종별·직급별·고용형태별 남녀 근로자 현황과 임금 현황, 임금격차 개선 계획 등을 매해 성평등가족부 장관에게 제출해야 합니다.
고용평등 임금공시제가 500인 이상, 그 다음 300인 이상 민간 기업에게 적용되면 한국의 극심한 성별임금격차가 해소될까요? 어느 정도 효과는 기대해볼 수는 있겠습니다만, 규모가 큰 기업에서 이뤄낸 성평등 '비용'이 아래로, 하청업체, 중소기업, 작은 사업장으로 전가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듭니다. 아래 프레시안 기사를 쓴 한국노동연구원 장지연 님의 주장대로 저임금 일자리를 양산하는 구조를 그대로 두고 여러 정책을 펼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붇기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프레시안, 경단녀, 왜 한국에만 있을까?(2016.12.5.)
경단녀, 왜 한국에만 있을까?
전 세계적으로 탈산업화와 노동 시장 이중화가 진행되는 와중에 우리나라는 간접 고용의 비중도 크게 증가하였기 때문에 노동 시장 규제와 보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저임금 노동의 ...
www.pressian.com
차별에 맞서는 연대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의 규모가 늘어나는 것을 방치하거나 조장하는 정책을 펴면서 성 평등한 노동 시장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누군가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 그 자리는 각 사회가 걸어온 경로의 특수성에 따라 채워지게 된다. 유럽에서 그 자리를 이주 노동자가 채운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이 채웠다."
위 기사 도입부에서 장지연님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실 위 기사가 쓰인 2016년 한국에서도 이미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가 이주노동자들에게 할당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노동인권 문제는 오늘날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한국 여성들에게 할당된 주요 일자리와는 다른 부문인 제조업, 농업 부문에서 특히 이주노동자들이 저임금을 감내하며 일하고 있는 것이죠.
중요한 점은 불평등한 구조가 필연적으로 '아래를 향한 경주'를 유발시킨다는 것입니다. 차별은 누군가에게 더 열악한 처우를 강요함으로써, 다른 계층에게 상대적인 편익을 가져다주는 "부정의"이고, '불평등'은 그 부정의의 결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모두의 평등을 위한 성평등한 일터'라는 기획 강좌의 주제 의식을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모두의 평등을 위해서는 아래로부터의 정의가 실현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여성'이라는 이유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그밖에 00이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양상은 각기 달라보이지만, 이 모든 차별들은 모두 차별을 통해 불평등을 강화, 유지려하는 지금의 불평등 체제의 존립 근거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지닌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대로, 우리 사회에 있는 모든 차별들을 함께 부수기 시작한다면, 불평등은 점차 자리를 잃게 되지 않을까요?
(3, 4강 후기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