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권리중심 노동과 장애인(21.4.23.)

2021. 4. 23. 15:18언론보도/인터뷰, 방송

2021년 4월 23일 금요일 KBS충주라디오 <공정사회>

 

권리중심 노동과 장애인

 

지난 4월 20일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을 맞아 장애인운동계는 세종시 정부청사 앞에서 제20회 ‘420(사이공이라고 읽음) 장애인차별철폐투쟁 결의대회’를 열었습니다.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았던 인식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의 일원이자, 권리의 주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모아졌습니다. 오늘 공정사회 시간에는 420 장애인차별철폐투쟁 결의대회에서 나온 장애인 노동권 3대 요구안과 우리 지역 장애인 노동권의 현주소를 살펴보겠습니다.

 

1. 세종에서 있었던 420 장애인차별철폐투쟁 결의대회가 뜨거운 관심 속에서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장애인단체뿐만 아니라 여러 시민사회노동단체가 함께 연대했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결의대회의 주제는 무엇이었나요?

오랫동안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치료을 받아야하는 존재, 재활이나 훈련이 필요한 존재로 대상화하면서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를 유지해왔습니다. 대부분 장애인은 반강제적으로 지역 사회에 나와 활동하거나, 노동할 수 없었고 집이나 시설에 갇혀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장애인 운동가들은 장애가 개인의 정신적, 신체적인 특성이 아닌 한 개인이 환경과 맺는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얘기했습니다. 휠체어 탄 지체장애인에게 장애가 있는 것이 아니라 휠체어가 지나다닐 수 없는 문턱과 계단이 장애를 만들어낸다고 본 것이죠. 마찬가지로 청각장애인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수어 통역이 없는 방송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우리 사회에도 번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420 장애인차별투쟁 결의대회의 캐치프레이즈는 ‘동정의 땅에서 권리의 들판으로, 비장애인 중심 사회를 이동시키자’였습니다. 동정과 시혜의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서 장애인을 인식하고 우리 사회의 변화를 요구하는 메시지입니다.

 

2. 한편 ‘비장애’를 중심에 둔 노동을 철폐하기 위해 장애인 노동권 3대 요구안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3대 요구안에 대해 먼저 간략하게 설명해주시죠.

우리 사회가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구성되고 있다는 사실은 노동 영역에서도 뚜렷이 나타납니다. 특히 지체장애와 시청각장애, 뇌병변장애, 지적장애, 정신장애 등 중증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노동권 실태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2020년 장애인의 경제활동참가율이나 고용율은 전체 인구의 절반 정도로 매우 낮고, 중증장애인은 장애인 고용율 절반에 못 미쳤습니다. 장애인 비경제활동인구가 일자리를 원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장애로 인해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이처럼 중증장애인이 노동하지 못하는 배경에는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조성된 노동환경과 인식이 있습니다. 이에 장애인 운동계는 중증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 조항 폐지와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1만 개 도입 및 제도화 그리고 중증장애인 동료지원사업 전면 개편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3. 중증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 조항 폐지와 관련된 내용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말씀대로라면 현재 중증장애인에게는 최저임금 적용이 안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네, 맞습니다. 최저임금법 제7조는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사람에겐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때 최저임금 적용 제외 여부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작업능력평가를 기준으로 결정되는데요. 앞서 2014년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이러한 조항을 폐지하고 국가가 최저임금 차액분을 보조해주는 보충급여제를 도입해 최저임금을 보장해야한다고 권고한 바 있습니다.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역시 이와 유사한 권고를 내렸는데요. 인권의 최소 기준의 원칙과 보편의 원칙에 따라 누구든 차별 받지 않고 최소한의 임금을 국가가 책임지고 보장해야한다는 취지인 것입니다.

 

4. 두 번째 요구가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인데요. 이름도 상당히 길고, 낯선 용어들의 조합이라 설명이 필요해보입니다. 어떤 내용인가요?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권리중심’라고 생각하는데요. 노동이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수단 이전에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시키는 행위이자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라는 점에서, 장애인 역시 같은 인간으로서 노동할 권리를 보장해야한다는 논리에서 출발합니다. 이러한 논리는 기존의 자본주의 시장 논리와는 결을 달리 합니다. 국제노동기구의 유명한 필라델피아 선언,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와 가까운 인식인 것이죠. 다시 말해 노동하는 능력은 사고 팔거나, 누군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상속 받은 ‘공통자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같은 취지에서 연구활동가 김도현은 ‘해당 개인이 지닌 현재의 조건 및 능력에 비춰볼 때 그 활동이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물질적․정신적․정서적 삶에 기여’한다면 공공의 노동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중증장애인을 예로 든다면 중증 장애가 있는 신체적 조건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동료 시민들의 물질적, 정신적, 정서적 삶에 기여한다면 그의 노동을 공공일자리로서 인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노동에 자신의 신체를 맞췄던 것과는 반대로 자신의 신체에 노동을 맞춘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납니다.

 

5. 그렇다면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를 가장 먼저 시행한 서울의 경우 일자리를 세 가지 직무로 구분했습니다. 첫째는 장애인 권익옹호 직무입니다. 장애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편의시설을 모니터링하고 현장에서 캠페인을 하는 등 장애인의 권익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활동이 노동으로서 인정받게 되는 겁니다. 둘째는 장애인 인식개선 직무입니다. 장애인과 장애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개선하는 강의 활동도 노동인 것이죠. 마지막으로 문화예술 직무입니다. 예를 들어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 참여한 한 뇌병변 장애인은 서울 마로니에 공원에 매주 소외된 계층의 인권을 주제로 하는 노래를 연습하고 부르는 활동을 했습니다. 노동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바꾸는 행위 자체가 또 다른 노동으로서 인정되는 것이죠.

 

6. 우리 지역 장애인 노동 실태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충청북도는 서울, 경기와 달리 아직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정책이 실시되지 않고 있고 논의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전라남도는 이번 420 결의대회를 거치면서 맞춤형 공공일자리 제도를 도입하기로 약속한 바 있습니다. 음성노동인권센터에서 만난 장애인 노동자들의 상담사례를 통해 몇 가지 문제점들을 말씀들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모두 다 같은 장애인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특성을 갖고 있는 것처럼 모든 장애인 역시 장애의 종류와 정도, 양상이 모두 다릅니다. 따라서 그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그가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보완책을 마련해야하는데 그러한 노력이 없고, 오히려 억지로 업무에 맞추도록 강요하다가 인권 침해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한편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하고, 쉽게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입니다. 말을 잘 못한다는 이유로 연장, 야간 근무를 강요하고 임금을 적게 주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벗어날수록 장애 여부를 떠나 우리 모두가 조금 더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장애인의 노동권에 관심 많이 가져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