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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무늬만 프리랜서, 방송계 비정규직 노동자들(2020.6.19.)

음성노동인권센터 2020. 12. 2. 11:59

2020.6.19. 공정사회 인터뷰지

무늬만 프리랜서, 방송계 비정규직 노동자들

 

지난 24일 청주 민영방송 비정규직 PD 이씨가 억울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습니다. 자신의 근로자지위를 확인하는 소송에서 패소하고, 이에 대해 항소한지 5일만에 일어난 비극이었습니다. 지역 시민사회단체에서는 고 이PD 사망사건 충북대책위원회를 만들고 유족 대표, 방송사측과 함께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청주 민영방송 이사회 의장이 허위사실에 의해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었다는 이유로 대책위원회 활동가 두 사람에게 손해배상금 1억원을 청구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오늘 공정사회 시간에는 청주 민영방송 비정규직 PD 사망 사건과 방송계 비정규직 노동문제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청주 민영방송 비정규직 PD의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의 구체적인 경위에 대해 먼저 이야기 나눠봐야겠는데요. PD는 방송사에서 어떤 일을 하던 사람이었습니까?

2004년 청주 민영방송에 입사한 이씨는 2018년 모든 방송 프로그램에서 하차 당하기 전까지 만 13년간 프리랜서 조연출PD, 연출PD로 근무해왔습니다. 그러나 무늬만 프리랜서였을 뿐 실제로는 정직원보다 2~3배 많은 분량의 업무를 부담했습니다. 연출PD로 근무하는 기간 동안 이PD는 매년 평균 9.5개의 프로그램 연출을 소화해냈습니다. 이중 고정 편성 프로그램만 2개 이상 연출했고 동시에 조연출도 2개 이상 맡아서 했습니다. 동일업종 종사자에 따르면 160분짜리 편성 프로그램을 연출하기 위해서는 기획, 사전작업, 촬영, 편집, 각종 행정처리 등의 업무도 감당해야해서 다른 프로그램을 맡기가 불가능하다고 하니 그 노동 강도가 얼마나 컸는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18년 이PD가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당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PD의 인건비는 정규직PD 급여의 60%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일은 두세배 열심히 일하는데 돌아오는 임금은 정규직PD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한 해 수입이 가장 높았던 2016년은 이PD가 입사한지 12년째 되는 해인데, 정규직 노동자 5년차 연봉과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PD가 맡았던 매주 60분짜리 프로그램의 인건비는 회당 40만원이었는데 이는 외주PD 인건비보다도 적었습니다. 한 지역방송사 PD의 인터뷰에 따르면 프리랜서라도 경력이 10년 넘는 PD는 회당 100만 원은 벌고, 적어도 70만 원 이상은 받지만 이PD는 그에 훨씬 못 미치는 인건비를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PD는 입사 14년만에 처음으로 공식석상에서 기획제작국장에게 인건비 인상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며칠만에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당했습니다. 다시 말해 해고를 당한 것이죠.

 

해고를 당한 후에 이PD가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냈습니다. 이 소송은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요?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은 내가 이 회사의 근로자라는 것을 법원으로부터 확인 받는 소송입니다. 해고 무효 확인 소송도 있는데 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했는지 궁금해하실 분들이 있으실 텐데요. PD는 형식적으로는 방송사 직원이 아니라 프리랜서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해고 무효를 다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근로자임을 입증해야했습니다. 실제로 이PD는 사측과 근로계약서를 맺은 사실이 없었고, 근로계약서뿐만 아니라 용역계약서 조차 쓰지 않고 구두로 계약을 맺은 상태에서 13년간 근무헸던 것입니다.

 

프리랜서라고 하면 어떤 소속 없이 자유롭게 여러 회사들과 계약을 맺으며 일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맞습니다. 프리랜서는 일종의 개인사업자의 개념입니다. 보통 전문성과 창의성을 요구하는 직종에서 주로 발견되는 노동형태인데요. 영상제작자, 기고가, 행사진행 MC 그리고 예술인 등등의 직종의 사람들이 프리랜서 형태로 일을 많이 하죠. 프리랜서의 가장 뚜렷한 특징 중 하나는 전속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어느 한 조직에 속해 있지 않다는 것이죠. 그리고 다른 특징은 프리랜서는 과업을 달성하는데 있어서 자신의 재량권이 미치는 범위가 넓다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 일반 노동자들은 업무상 지휘 감독 권한이 있는 관리자의 통제를 따라야하며, 대부분 업무 시작시간과 종료시간이 정해져있고 업무 장소 또한 정해져 있습니다.

 

그럼 이PD가 프리랜서라고 볼 수 있는 겁니까?

PD의 경우를 살펴보면, PD는 해당 방송사의 전속 연출PD로서 근무해왔었습니다. 실제로 방송국에서도 이PD에게 정규직과 동일한 명함을 발급해주었고 직원들 사이에서도 이PD는 방송국 직원이었습니다. PD는 프로그램 최종 검수, 송출부터 출연진 섭외, 프로그램 구성,촬영,편집,중계차 디렉팅 업무까지 책임졌습니다. 정규직 PD들과 근무형태가 동일했고, 보고, 지시 체계 역시 동일했습니다. 매일 국장에게 업무보고도 했고 지시를 받은 것입니다. 매일 오전 830분 전에 출근해 오후 6시 이후 퇴근했고 주 5~7일 일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PD 업무 외에 지자체 보조금 사업과 같은 행정 업무도 떠안아 했습니다. 그는 지자체에 지방보조금 실무책임자로서 보조금 신청 서류 작성, 협의, 각종 기안문과 정산 서류 작성까지 도맡아 해습니다. 회사 내부 경영과 관련된 내용이니 정직원이 아니면 맡기기 힘든 업무 내용이죠.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서 볼 때, PD는 무늬만 프리랜서지 실제로는 정규직 직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청주법원에서는 이PD의 근로자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뭘까요?

PD는 자신의 노동자성을 입증하기 위해서 동료 증언을 부탁했습니다. PD를 돕기 위해 용기를 낸 동료 직원 3명이 PD가 정규직과 다를 바 없이 일했고, 인건비 인상을 요구하다 부당하게 실직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써주었습니다. 그러나 법정에 증인으로 나오지 못해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PD는 모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회사가 진술서를 낸 직원들에게 전방위로 압박을 가하고 있어 당사자들이 두려워한다며 동료 직원들의 진술을 기사에 쓰지 말아달라며 부탁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정황을 봤을 때 이PD가 자신의 노동자성을 입증하기 위한 증언과 자료들을 제시하기에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음을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법원은 이PD가 방송사측의 주장만을 받아들인 판결을 내어놓았습니다.

 

단지 이PD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방송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문제들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주시죠.

2016년 드라마 PD 이한빛님의 자살 사건으로 방송제작 현장의 노동 실태가 드러난 적이 있습니다. 하루 20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과 휴게시간의 절대적 부족,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유서를 통해 고발했는데요. 이후 노동조합과 인권단체들의 요구로 방송업과 영상오디오 기록물 제작 및 배급업이 근로시간 제한 특례업종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노동자성을 인정 받지 못하는 프리랜서는 해당이 되지 않습니다. 또 다른 대표적인 직군은 방송작가입니다. 2019년 방송작가 노동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3퍼센트가 프리랜서로 계약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매일 출퇴근을 하는 상근직 노동자였습니다. 2020년 방송계 비정규직 실태조사에 따르면 근로계약서 체결률은 25%에 불과하고 연차휴가미사용수당 지급률은 7%, 4대 보험 가입률은 8%에 머물러 있습니다. 방송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많은 분들께서 관심 가져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