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일 화요일 ~08:56:00
21년 만에 통과된 노란봉투법, 그 오해와 진실
지난달 24일, 노조법 제2·3조 개정안, 일명 '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2004년 관련 법안이 처음 국회에 발의된 후 21년만의 일입니다. 노란봉투법 통과에 노동계는 일제히 환영의 박수를 보내는 반면, 경영계에서는 "기업들이 해외로 떠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고 야당인 국민의힘은 아예 '경제내란'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음성노동인권센터 박성우 상임활동가와 함께합니다.
1. 먼저 노란봉투법에 대해 설명해주시죠.
네. 이번에 통과된 노란봉투법의 핵심 내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내용은 노사 관계에서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하청 노동자들이 계약상 ‘사용자’인 하청업체와 교섭을 해야만 했는데요. 하청업체는 명목상 계약을 맺고 있을 뿐 근로 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어서 교섭을 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노란봉투법은 노사관계에서 ‘사용자’의 범위를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자’로 확대했습니다. 하청 노동자들 역시 원청 업체와 직접 교섭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셈이죠.
노란봉투법의 두 번째 핵심 내용은 노조 활동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기업들이 노조의 파업 행위 등에 대해 최대 수백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를 해왔는데요.
이 손해배상 청구로 인해 노동자들의 파업이 제한되고 심지어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반복되면서, 노동계와 시민단체에서는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를 막아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났어요. 애초에 ‘노란봉투법’ 이라는 이름 자체가 파업 이후 수십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받게 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 시민들이 모금 봉투를 보낸 데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2. 그런데 통과까지 20년 넘게 걸린 이 노란봉투법에 반발이 극심하다면서요?
그렇습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아달라는 내용의 서신을 국회의원 전원에게 보내는 등 경영계의 반발이 큽니다. 경영계는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 업체와 직접 교섭하게 되면 쟁의행위, 소위 파업이 상시적으로 발생해 기업 경영에 피해가 클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특히 수백 개의 하청업체가 있는 조선업 등의 경우, 원청이 일일이 각 하청업체들과 직접 교섭하면 현장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또한 '정리해고·공장폐쇄 같은 경영상 결정에 반대하는 파업이 합법이 되면, 경영권 침해 아니냐'는 지적과 '노란봉투법이 손해배상을 막으니, 회사가 파업 손해를 보전받을 길이 없다'는 주장도 속출하고 있습니다.
3. 그렇다면 노란봉투법 통과로 정말 이러한 우려가 실현될 가능성이 있나요?
경영계의 우려는 과장된 측면이 큽니다. 먼저, 이번 법은 ‘모든’ 하청 노조가 원청과 자동으로 교섭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경우에 한정됩니다. 그리고 이미 한국에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있습니다. 사업장마다 ‘교섭 창구’를 하나로 단일화해 난립과 중복 요구를 줄이는 장치입니다.
현장의 체감도도 비슷합니다. 조선업을 예로 들면 지금은 하청노조가 수십 개 하청업체와 제각각 교섭합니다. 오히려 원청과 한 테이블을 만들면, 동일 공정·동일 위험·동일 기준을 놓고 일괄 조정하기 쉬워집니다.
무분별한 파업과 손해배상에 대한 우려도 마찬가지입니다. 현행 체계에서 쟁의행위는 ‘임금·근로시간 등 근로조건’에만 제한됐고, 정리해고나 통폐합은 ‘경영권’으로 밀려나 파업이 불법이 되기 쉬웠습니다. 그런데 정리해고·폐업·이전은 형식상 ‘경영상 판단’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고용안정·임금·작업장 안전 등 근로조건에 직결됩니다. 이번 법은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 결정'까지 교섭·쟁의 대상에 포함해, 극단적 충돌 이전에 노동위원회·교섭 테이블에서 해결의 길을 넓혔습니다.
중요한 건, 이것이 노조에 ‘파업 면허’를 준다는 뜻이 아니라는 겁니다. 폭력·파괴·주요 설비 점거 등은 여전히 금지(노조법 제42조)이고, 불법행위에는 손해배상 책임이 유지됩니다. 다만 법원은 예전처럼 일괄 ‘연대책임’을 지우기보다, 지위·역할·참여 정도를 따져 책임을 개별화하도록 바뀝니다. 합법적 파업까지 ‘거액 손배’로 막던 관행을 바로잡아 대화의 비용을 낮추자는 취지입니다.
4. 해외 상공회의소들이 “사용자 범위가 모호해 법치주의에 반한다”는 우려를 냈다는 보도도 있었는데요? 실제로 투자 이탈로 이어질까요?
우려 표명은 있었지만, ‘일괄 철수’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로 해석하긴 힘듭니다. 유럽은 형사처벌 규정은 약할 수 있어도 파업권 보장이 넓어 사용자에게 교섭을 강제하는 실질적 압력이 존재합니다. 한국은 합법 파업 요건이 좁고 사용자 교섭거부에 맞설 수단이 제한적이어서, 그 공백을 법률로 메우는 제도 설계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노란봉투법 때문에 다 떠난다’는 통속적 주장은, 중대재해처벌법 때와 비슷하게 경고 효과를 노린 레토릭에 가깝습니다. 오히려 원·하청 간 저임금·고위험 구조를 완화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면 내수·기술 축적에 플러스로 작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국제노동기구(ILO)도 원청을 상대로 한 단체교섭의 정당성을 여러 차례 확인해 왔고요. 방향성 자체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가깝습니다.
5. “노조 있는 협력사엔 일감을 끊는다”는 보복, 더 심해지지 않겠느냐는 걱정도 있습니다. 차단 장치는 있습니까?
노조에 대한 보복행위는 이미 불법입니다. 원청이 하청노조를 이유로 거래를 끊거나 폐업을 유도하는 행위는 오래전부터 부당노동행위로 판시돼 왔습니다. 이번 법은 사용자 범위를 현실화해 원청의 책임 회피 통로를 줄이고, 이런 보복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결국 핵심은 집행입니다. 고용노동부가 신속 조사·시정명령, 공정위·검찰과의 합동 대응, 공공조달에서의 노동권 준수 가점/감점 같은 행정 패키지를 병행해야 효과가 살아납니다.
6. 현장의 노동자·사업주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실 말씀이 있다면요?
노란봉투법은 갈등을 키우려는 법이 아니라, 갈등을 제도 속으로 끌어들이는 법입니다. 하청노동자에게는 ‘진짜 사용자’와 말이 통하는 길을, 기업에는 예측 가능한 룰 기반 조정 시스템을 제공합니다. 파업을 쉽게 하자는 게 아니라, 파업 전 단계의 대화를 가능하게 하자는 겁니다. 정부는 집행지침과 인력 보강으로 신뢰를 만들고, 원청은 책임 있는 사용자로서 안전·임금·시간의 기본값을 올려야 합니다. 그게 인력난을 줄이고 품질·납기를 지키는 지름길입니다.
결국 이 법의 성패는 ‘누가 더 크게 목소리를 내느냐’가 아니라, 현장에서 얼마나 성실히 교섭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현장의 상식이 법의 취지와 만날 때, 한국의 노사관계도 한 단계 성숙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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