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L만도 회장의 뒤늦은 사과... 이제는 정말 바뀌어야"
스물여덟의 건실했던 청년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데는 무려 62일이라는 기나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지난 7월, 자동차 부품 제조 대기업 HL만도 평택공장에서 작업 중 기계에 끼여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하청업체 노동자 고(故) 김승모 님의 이야기입니다.
차가운 안치실에 아들을 둔 채 거리로 나서야 했던 유가족의 피 끓는 호소 끝에, 지난 추석을 앞두고 가까스로 장례가 치러졌습니다. 하지만 장례가 끝났다고 해서 청년의 죽음을 둘러싼 원청의 구조적 책임과 우리 사회의 ‘위험의 외주화’ 문제까지 덮일 수는 없습니다. 오늘은 음성노동인권센터 박성우 활동가를 모시고 이 비극과 관련해 끝나지 않은 과제들에 대해 짚어보겠습니다.
Q1. 사고 발생 62일 만인 지난 21일에야 비로소 고 김승모 님의 장례가 '노동시민사회장'으로 치러졌습니다. 굳게 닫혀있던 사측의 태도가 바뀌고 합의에 이르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무엇이었습니까?
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유가족분들이 장례조차 미룬 채 무려 두 달 넘게 피눈물 나는 투쟁을 이어간 결과입니다. 서울고용노동청 앞에 분향소를 차리고 노숙 농성에 돌입한 지 14일째 되던 날, 마침내 정몽원 HL그룹 회장이 분향소를 직접 찾아와 헌화하고 유족에게 사과했습니다.
협상 과정도 순탄치 않았습니다. 사측이 유족과 사전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재발방지대책 기자회견을 열려다 거센 반발을 사며 무산되는 촌극도 있었죠. 하지만 추석 전에는 반드시 아들을 편히 보내주고 싶다는 유족의 간절한 뜻이 있었고, 결국 밤샘 교섭 끝에 극적인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사측은 유족이 요구한 공식 사과와 함께, 제3의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객관적인 사고 설비 조사, 그리고 현재 제기되고 있는 불법파견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재발방지 대책에 합의했습니다.
Q2. 합의에 이르기까지 유가족분들이 겪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텐데요. 특히 고인이 돌아가신 지 49일째 되던 날 열린 이른바 '49재 추모 기자회견'에서는 고용노동부의 늑장 수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대단히 높았다고요.
그렇습니다. 통상 49재는 고인의 넋을 기리고 평안한 안식을 비는 엄숙한 시간입니다. 하지만 유가족과 대책위는 그날피켓을 들고 서울노동청 앞에 서야만 했습니다. 고인의 아버지는 "우리 아들이 죽은 지 49일이 지나도록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다"며, 장례도 못 치렀는데 회사는 기계 가동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고 분개했습니다.
특히 유가족과 시민사회가 가장 분노한 것은 노동부와 경찰의 '꼬리 자르기식' 수사 행태였습니다. 사고 직후 수사 당국은 평택공장 현장과 하청업체만 압수수색을 했을 뿐, 진짜 의사결정권을 쥔 같은 건물 8층의 본사 사무실은 압수수색 대상에서 쏙 빼놓았습니다. 사측에 면죄부를 주려는 것 아니냐는 거센 비판이 쏟아졌고, 대책위는 "기업 봐주기를 즉각 중단하고 실질적 책임자를 수사하라"며 맹비난했습니다.
Q3. 당시 기자회견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참사의 근본 원인이 단순한 안전 수칙 위반이 아니라 '불법파견'이라는 범죄행위에 있다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이 불법파견 의혹,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입니까?
이 사건을 단순 사고가 아닌 예견된 '기업 살인'으로 보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입니다. 정상적인 도급 관계라면 하청업체가 독립적으로 업무를 지휘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제대로 된 도급계약서조차 불분명한 상태에서, 원청인 HL만도가 직접 하청 노동자들에게 공기 단축을 요구하고 구체적인 작업 지시를 내렸다는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즉, 서류상으로만 하청일 뿐 실제로는 원청이 마음대로 부려 먹으면서, 정작 생명이 직결된 안전 관리와 책임은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전형적인 '불법파견' 꼼수입니다. 위험을 막지 못한 것도 모자라, 불법적으로 노동자를 죽음의 현장으로 몰아넣은 범죄행위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Q4. 회사는 이번 사고가 예측할 수 없는 불운이었다고 변명해 왔지만, 최근 국회를 통해 공개된 자료를 보니 지난 10년간 평택공장에서만 수백 건의 산재가 발생했다고요?
네, 조국혁신당 서왕진 의원실이 노동부로부터 확보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이 사고가 결코 우연이 아님이 명백히 드러납니다. 지난 2016년부터 올해 6월까지 10년 동안 HL만도 평택, 원주, 익산공장에서 발생한 산재 사고가 무려 223건에 달합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 중 절반가량인 112건이 바로 사고가 났던 '평택공장' 한 곳에 집중되어 있다는 겁니다. 특히 평택공장의 산재 112건 중 고 김승모 님이 당한 것과 똑같은 '끼임 사고'가 무려 33%를 차지했습니다. 6년이라는 짧은 기간만 놓고 봐도 설비 가동 중 끼임 사고가 21번이나 반복해서 터졌습니다. 심지어 10여 년 전인 2016년에도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기계와 같은 기계에서 똑같은 끼임 사고가 있었음에도 방호 장치는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산재가 터질 때마다 회사는 재발방지를 약속했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고치지 않은 끔찍한 '도돌이표 대책'이었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Q5. 상황이 이토록 심각한데도 관할 당국은 대체 뭘 했나 싶은데요. 사고 이후 노동부가 평택공장을 상대로 대대적인 특별감독을 벌였고, 그 결과가 최근 발표됐죠?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노동부가 사고 발생 후 평택공장과 하청업체 4곳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기획 감독을 벌였습니다. 그 결과 무려 138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이 무더기로 적발되었습니다. 글로벌 일류 기업을 표방하는 대기업의 공장 내부가 사실상 안전 관리의 '무법지대'였음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셈입니다.
수많은 적발 사항이 쏟아지자, HL그룹 측은 부랴부랴 외부 전문기관을 통해 매년 전수 진단을 실시하고 안전 투자를 대폭 확대하겠다는 내용의 재발방지대책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10년 동안 끊임없이 대책을 발표하고도 223건의 산재를 양산했던 기업입니다. 이번 약속이 또다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종잇조각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현장 노동자들과 시민사회의 철저한 감시가 필요합니다.
Q6. 유가족의 피 끓는 싸움 끝에 장례는 치러졌지만, 아직 이 사건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닙니다. 김승모 님의 억울한 죽음이 남긴 묵직한 숙제들,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요?
고인이 떠난 그 일터는 앞으로 또 다른 청년들이 들어가 땀 흘려 노동하고 살아가야 할 공간입니다. 그곳을 계속 생과 사의 갈림길로 남겨둘 수는 없습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수사 당국의 성역 없는 수사입니다. 꼬리 자르기식 처벌로 끝낼 것이 아니라, 불법파견 의혹의 실체를 낱낱이 밝혀내고 중대재해처벌법을 엄격히 적용해 원청의 실질적 경영 책임자들을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 합니다. 또한 사측은 유족과 약속한 외부 전문가 합동 조사와 안전 시스템 전면 개조 약속을 한 치의 거짓 없이 이행해야 합니다.
이윤을 위해 위험을 비정규직에게 외주화하고, 산재를 덮는 데 급급한 기업은 결코 미래를 논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두 번 다시 '제2의 김승모'를 만들지 않기 위해, 남겨진 수사 과정과 재판 결과를 끝까지 매서운 눈으로 지켜보고 굳건히 연대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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